[경일춘추]덤벙주초

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2020-06-17     경남일보

 

늦게 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에서야 알았기에 얼마나 가치 있는 일들이 많은지,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류시화에게’라는 시 한수를 받아 적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것은 파멸/아름다웠던 내 청춘의 파멸/텅 비워졌었던 내 머리의 파멸/너를 너로만 보았던 내 과거의 파멸/늦게 안다는 것은/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는 것은/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맙고 감사하나 일이듯/ 불현 듯 기막힌 생각으로 무릎 치고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듯/펄떡이는 물고기 되게 하는 것/내일 또 너를 기대하는 것” 반면에 류시화가 편집한 잠언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에도 알았더라면’에는 그 때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로 넘쳐나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에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그만큼 나는 덜 후회하고 지금부터 알아가는 것들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순간들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뤄가는 세상일들을 관조하는 기쁨과 여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한옥은 바로 그런 기쁨 중 하나다. 한옥은 하나의 집이 아니다. 우주요 세계관이다. 실제 우주를 집 안으로 들여 놓았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집 안에 연못을 만들어 하늘과 땅을 관조했다. 여러 채의 집을 한 울타리에 지어 독립된 주거공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했지만 마당을 통하여 소통하고 통합하는 원리도 담았다.

왜곡과 극단이라는 ‘위험한 도구’를 통해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마술사 같은 솜씨도 숨겨 놓았다. 처마의 양쪽 끝 선이 치켜 올라간 ‘앙곡’, 지붕위에서 내려다 볼 때 중심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게 만든 ‘안허리곡’, 바깥쪽 기둥을 안쪽 기둥보다 높게 만든 ‘귀솟음’, 바깥쪽의 기둥을 안쪽으로 쏠리게 한 ‘안쏠림’, 기둥의 중간부분을 더 굵게 만든 ‘배흘림기둥’과 같은 것들이다. 왜곡과 극단을 터부시하고 정직하게만 집을 지었다면 사람냄새 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집이 되었을 것이다.

덤벙주초는 인간미가 듬뿍 묻어나게 만든 한옥의 숨은 1인치다.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온 한옥은 주춧돌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울퉁불퉁한 자연석에 맞도록 기둥 밑 앉히는 부분을 ‘그랭이질’을 통해 이를 맞췄다. 진작 알았다면 내 진액이 묻어나도록 감탄하지 못했을 것을 지금에야 알았기에 진정한 내 것이 되었다.

조문환/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