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망종(芒種)

2020-06-18     경남일보

 

무논에 모판 던져놨더니

길 가의 나무들 일손 돕겠다고 나선다.

고양이 손도 아쉬운 시절.


-강옥



1년을 15일로 24등분한 계절의 마디인 망종은 맥(麥)을 비롯한 춘농사의 수확철로 연중 가장 바쁜 때를 말하며 소만과 하지 사이에 있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기술에 이어 비용 절감과 인력 절감을 위해 벼 직파 신기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무논 모판을 보는 순간 바지를 허벅지까지 말아 올리고 무논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던 기억이 시절 너머로 찰랑거린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70년대쯤, 농촌 일손 돕기의 일환으로 중학교 전교생이 교문 밖 들판으로 나가 못 줄을 잡고 손톱 밑이 까맣도록 모심기를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엄마를 따라 새참을 이고 막걸리 주전자를 출렁이며 삐뚤삐뚤 논둑길을 걸었던 그런 시절. 무논에 비친 한 폭의 그림을 끌어들여 끝내 일손 돕기에 동참시킨 작가의 상상력을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이 오면 황금물결을 포착할 작가의 행보가 벌써 기대된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