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고상한 부자이야기

정유근 (진주시 시민안전과장)

2020-06-29     경남일보

 

우리는 한 때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며 새 해를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 IMF 경제위기를 막 극복한 2002년 한 카드회사가 CF 문구로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꼭이요”라는 문구를 사용했었고, 이 문구가 최고의 경제위기를 경험했던 국민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지 새해의 덕담으로까지 확산되었던 것 같다.

이처럼 “부자 되세요” 하는 말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사람들에게 적잖게 위로가 되는 말인 것 같다. IMF 외환위기 때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엄청난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매년 8~9%씩 성장하던 경제성장률이 -6.9%를 기록했었는데,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1.5% 대를 기록할 것이고 최고로 잘 방어한다고 해도 0% 정도일 것이라고 하니 코로나19의 경제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부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큰 부자는 하늘이 정해주고 작은 부자는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큰 부자건 작은 부자건 부자가 되기도 힘들겠지만 부자가 되면 뭐하겠는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부자 되기를 꿈꾸다가 그 꿈을 이룬들 부자 된 이후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14세기경에 있었던 10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깔레시’의 부자와 귀족들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산뿐 아니라 생명까지 내놓으며 자신들을 처형하는 대신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한 감동적인 사건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유래가 되어 서구의 부자와 귀족들이 지켜야할 도덕적 의무가 됐다고 한다.

진주시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고상한 부자가 있었으니 부유했지만 멈출 줄을 알고(止) 삼가 하는 것(愼)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지신정 허준과 허만정의 6촌 사위인 LG창업주 구인회다.

이들이 창업한 기업이 GS와 LG그룹이다. 이 두 그룹간의 아름다운 동거와 분리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지수면 승산리에 가보면 아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두 그룹 총수들의 생가와 지신정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개방이 금지되어 있어 관광객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아쉬웠다.

이곳을 관광명소로 알리기 위한 진주시의 계속된 노력 끝에 마침내 두 그룹의 총수들까지도 개방을 약속했다고 하니, 550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던 진주의 고상한 부자들에 관한 솔깃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명소가 열리는 것 같아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해본다.

정유근 (진주시 시민안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