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사진에 담긴 행복 지킬게요”

진주署, 가정폭력 부부 대상 초심 찾기 '가족사진관' 운영

2020-06-29     백지영
“평생 이렇게 웃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행복하게 사진 촬영한 만큼 잘 사는 걸로 보답할게요.”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린 지난 24일 오후 3시께 진주시 신안동 한 사진관.

밝은 갈색 턱시도와 나비넥타이 차림의 김성모(가명)씨와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반짝이는 티아라를 착용한 차은희(여·가명)씨가 사진사의 주문에 따라 서로를 마주 봤다.

이날은 40대 부부인 이들이 결혼 3년 만에 처음으로 결혼사진을 촬영하는 날.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탓에 처음으로 서로의 턱시도, 웨딩드레스 차림을 본 부부는 ‘다른 사람 보는 것 같다’며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사는 “그간 리마인드 결혼사진을 촬영하는 중년 부부를 많이 봐왔지만 이 부부는 다른 이들보다 유독 잘 웃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김씨 부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정 폭력으로 경찰이 예의주시하던 대상이었다.

이들은 경남지방경찰청이 이달부터 ‘가정폭력 재범 제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가정폭력 신고가 많은 도내 5개 경찰서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가해자 교정·상담 프로그램 ‘가족 초심찾기’ 우수 수료 부부다.

‘가족 초심찾기’는 가해자 교정을 위해서는 가정 폭력 발생 초기 가해자에 대한 집중 상담이 효과적이라는 점에 착안해 경찰 단계에서 가해자 엄정 대응과 함께 진행하는 교정 프로그램이다.

경찰서마다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존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돼 재발 우려가 있는 가해자 중 개선 의지가 강한 가해자를 매달 3명 선정해 전문 상담가와 1:1 대면 상담을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씨는 이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는 진주경찰서의 권유에 동의해 ‘가족 초심찾기’를 수료한 이후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인물이다.

무직이었던 김씨는 일용직 근무로 생계 전선에 뛰어든 데 이어 가정폭력의 시발점이 되곤 했던 폭음을 중단해 아내와의 사이가 부쩍 좋아졌다.

김씨는 “오늘도 지인들이 술 한잔하자고 연락해 왔지만 만나면 진탕 마실 게 뻔해 안 나가겠다고 했다”며 “이제 아내와 가볍게 반주하는 것 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경찰은 김씨가 전문가 상담을 받은 것과 더불어 경찰 차원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여러 차례 자택에 방문하는 등 각별히 관리해온 결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진주서 가정폭력예방경찰관인 김고은 경장은 “단호한 처벌만큼 중요한 부분이 개선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 다시 가정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며 “범인 검거처럼 실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라 눈에 띄진 않지만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달부터 진주경찰서 차원에서 진행한 ‘소소(소소하게 소통한다) 프로젝트 가족사진관’ 역시 작은 관심과 소통을 통해 지속적인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아온 가정에 변화를 끌어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가정폭력 피해 가정들을 방문해본 결과 대부분은 가족사진이 없거나 수십 년 된 결혼사진 한 장만 놓여 있다는 공통점에 착안했다. 과거에 멈춰 있는 가족 모습이 아닌, 행복하게 변한 가족 모습을 남기고 초심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경찰은 ‘가족 초심찾기’ 수료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한 촬영이 해당 가정과의 라포르(rapport·친밀도)를 강화해 당사자들의 인식·태도 변화와 재범 억제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당초 계획 수립 당시에는 화장과 사진 촬영 등을 경찰 재능 기부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혹시나 하고 연락해본 지역 내 사진관이 선뜻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고품질의 사진을 선물할 수 있게 됐다.

사진관 관계자는 “취지를 듣고 무료 촬영을 제안했지만 경찰이 조금이나마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해 기본 금액만 받기로 했다”며 “거창한 이유는 없다. 좋은 취지인 만큼 당연히 진주시민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이제는 웃을 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아내에게 김씨는 “앞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