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면 복 받는 나라 만들자

2020-07-21     이웅재
이웅재기자

 

우리는 착한 것은 널리 권장하고, 악한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배웠다(勸善懲惡).

그런데 요즘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선이 악이요 악이 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이런 배경에는 오염된 언어가 한몫 했지 싶다. 익히 알고 있는 정의와 평등, 공정 조차 정반대의 모습으로 생소하게 다가오는 세상에 선과 악인들 온전할까 싶다.

언어는 사람의 사고를 강제하는 기능이 있다. 그렇기에 왜곡된 언어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남는다. 잘못 된 언어는 사회를 오염시킨다. 이런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언어유희로 이익을 구한다.

권력이든 명예든 재물이든 한 순간 탐한것을 가진 대가가 인과율을 벗어나지 못할텐데 당장 눈앞의 이익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익되는 행동으로 삶을 꾸려간다. 일부러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운동의 목적이 있다면 몰라도 가까운 길 두고 먼길 돌아가는 사람 있을까. 똑 같은 일하고 돈 더준다는데 마다할 사람 있을까.

선을 행하는 착한 사람이 많은 사회는 선에 대한 보상이 마땅히 주어지는 사회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이익되는 악을 외면하고, 손해가는 선을 행하라는 것은 어부성설이다. 나는 어떻게든 돈 벌고, 넌 가난해도 착하게 살라하면 누가 따르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가난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해서 가난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욕 먹는 것은 순간이요 남는것은 돈’이라는 소리도 들려온다.

너와 나의 이익은 더 갖냐 덜 갖냐의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우리의 이익, 시너지 효과가 관건이다. 창조경제의 본질도 여기에 있지 싶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한방울 땀을 더 흘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언어가 제대로 서게 된다. 말장난으로는 실익을 얻지 못한다는 결과에 수긍할 때 건전한 공동체를 위한 땀이 가치롭게 빛난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구분해야 하지만 너의 정의와 나의 정의가 달라서는 안된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먼데 있지 않다. 나만, 또 너만 바로서면 된다.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따로 놀수는 없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신중함도 필요하다. 이익만 좇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치닫는 우리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선한 말, 선한 행동이 정말 기다려 지는 시국이다.

이웅재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