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작별과 적응

최영륜 변호사

2020-07-30     경남일보

 

갑자기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지금 살고 있던 집에서 10년 이상 살아오면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사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주변에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가족끼리 운동가기도 좋았고,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 빵집, 내가 자주 들리는 세탁소, 아이들의 학원 등이 있어 생활에 편리했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과 가끔 동네 찻집에서 차 한잔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조그마하던 아들과 딸이 사춘기 청소년들로 잘 자라주었기에 그냥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겼다. 아내의 전근, 두 아이의 상급학교 진학 등등. 그러던 참에 아내와 함께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아내의 새 직장과 가깝고, 딸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있는 친구네 동네로 이사하기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10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동네 산책로에 조금 더 자주 가볼걸. 지나치면서 눈인사만 했던 이웃들과 조금 더 살갑게 지낼걸. 이 집에 친구들과 친지들을 더 자주 초대해서 재밌는 추억을 나눌 걸 그랬다. 그중에서도 10년 가까이 생활하던 나의 공간과 동네와 작별해야 한다는 게 가장 서운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도 4~5번 정도 이사를 했다. 그 당시에는 이사를 하게 되면, 기존에 알던 이웃들, 친구들과 다시 못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지금이야 휴대폰에 카톡으로 언제라도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이사한 이후에 옛 동네 친구들이 먼 길을 걸어서 나를 보러와 주었던 어린 날의 따뜻한 장면이 떠오른다. 서로 껴안으며 우정은 변치 말자며 다짐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 후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자 새 친구들이 생겼었다. 돌이켜 보면, 이사라는 사건에는 ‘익숙한 것과 작별’과 함께 ‘새로운 것에 적응’이라는 감정이 함께 맴돌게 되나보다.

그렇다면 이사 가기 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더 자주 산책도 하고, 이웃들과 인사도 하고, 친구도 초대하면서 ‘익숙한 것과 작별’의 순간을 즐겨야겠다. 그리고 난 후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새 산책로를 찾아보고, 인근 편의점, 세탁소, 학원 등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도 멋지게 준비해야겠다. 옛 추억이 떠오른 김에 어릴 때 살았던 동네들을 방문해 봐야겠다. 내가 살았던 집이 아직 그대로 있는지,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동네 공터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