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입추

2020-08-06     경남일보
정재모 논설위원
 
가을 추(秋)자는 벼(禾)와 불(火)을 합친 구조다. 곡식 익는 걸 지사(指事)한 걸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국 상나라 때의 갑골문에 보이는 이 글자 원형은 모닥불 위에 놓인 메뚜기 형상이라 한다. 벼가 아닌 메뚜기? 가을은 메뚜기 구워 먹는 철이라는 뜻이다. 오늘이 입추. 가을로 접어든다는 절기다.

▲중부지방 물난리 통에도 우리 고장은 장마가 끝나 덥다. 어제오늘 태풍 영향으로 일시 덜하다지만 삼복의 한복판이니 염천은 염천. 달력 속 저 가을 추 자가 약 올리나 싶다. 하지만 하안거 든 선승 화두 붙들 듯 ‘입추’란 저 두 음절에 매달려 볼 일이다. 청량한 기운이 한순간 몰려올지 누가 아는가. 가을이란 어감에 의지해 자기최면이라도 건다면 혹 위약(僞藥) 효과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

▲달력은 정직하다. 황도 축에 살짝 어긋난 지구 자전축 각도에 맞춰둔 24절기가 거짓일 리 없다. 비록 지금으로선 어림없는 말 같지만 가을은 이미 입추 앞세우고 사부작사부작 오고 있다. 한래서왕. 아무리 모진 더위도 필경 찬 기운에 밀려나게 돼 있다. 들녘에 나가보면 볏잎은 어느새 두렁 위로 한 자 턱이나 솟았다. 줄기는 하마 이삭을 배기 시작한 듯 통통하고…

▲염제가 제아무리 여름 틀어쥐고 있고 싶어도 달력엔 이미 가을 추 자가 떴다. 가을을 메뚜기 구워 먹으며 단백질 섭취하는 계절로 표현한 옛 글자를 음미해 볼 만하다. 어차피 가는 여름, 좀 더 참으며 일과 운동으로 땀에 흠뻑 젖어보면 어떨까. 그런 뒤 삼계탕이라도 들면서 느긋이 가을 바람 기다리는 것도 지혜라면 지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