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수첩]택배 없는 날

2020-08-13     김지원
오늘은 택배없는 날이다. 전국의 택배기사들이 하루 휴일을 맞는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무던히도 많은 택배를 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가 여덟달째 이어지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두려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마트에 가는 대신 식료품 배송을 주문했고, 백화점에 가는 대신 온라인 쇼핑을 결재했다. 수돗물에서 벌레가 나오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자 생수묶음도 배달차량에 줄줄이 올라탔다. 먼 지역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자 영양제가 배송대열에 동승했고, 방 안에 갖힌 나홀로 족들도 무료함을 떨쳐줄 기타등등의 물건들을 연달아 장바구니에 넣고 무료배송을 선택했다.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 배송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비대면 배송이 대세라 “문앞에 배송했다”는 문자·카톡이 날아오면 쓱 들여오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이 택배로 완성되는 시대가 순식간에 도래했다. 그리하여 고통받는 이름이 바로 택배노동자다.

8월 14일은 민간택배업 종사자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자”고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협의해서 정한 날이다. CJ대한통운, 롯데, 한진과 우체국이 택배없는 날에 동참한다. 국내에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만에 최초로 정해진 공식 휴일이다. 법정휴일, 연차휴가, 정기휴가도 없이 쏟아지는 택배물량을 감당해야 했던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이제 겨우 첫 휴일이 생겼다.

자체배송, 심야배송이 틈새를 노리고 있어 ‘택배없는 날’이 성공적일지 우려되지만 ‘택배없는 날인데 나는 택배를 받았노라’고 SNS에 인증샷 올리는 헛발질은 안봤으면 싶다. 게다가 ‘택배 휴일’에 고객이 불편할까봐 임시공휴일인 17일을 정상근무하겠다는 방침에는 갸우뚱해진다.

그동안 공휴일, 주말, 밤 낮 할 것없이 방금 배송된 택배상자를 뜯어보는 기쁨을 누렸으니 하루가 아니라 매월 하루는 양보해야 할게다. 다 같이 쉬엄쉬엄 해도 좋은 세상이면 살만할텐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