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고소한 슬픔

2020-08-13     경남일보


깨를 털듯 조심조심
깨알 같은 자식들 여태도 애잔하신가

돌아오는 보따리마다
갈퀴 같은 손으로 꾹꾹 찔러주시는
엄마표 사랑 두 병             -권현숙



긴 장마에 복더위도 잊은 채, 돌아보니 팔월 한복판이다. 햇빛이 짱짱해야 알갱이가 토실하다는데 겨우 비를 피한 깻단이 처마 밑으로 눅눅하게 기댄 집들이 많다. 어머니가 깨를 떨고 계신다. 한 알이라도 바깥으로 튀어 나갈까 봐 조심조심 깻단을 터는 동안 자식들의 식탁을 꿈꾸는 어머니. 이집 저집 챙겨 줄 걸 상상하며 우르르 몰려올 추석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

아무 데나 가도 어머니는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적이 없다. 갖가지 콩이며 빻은 고춧가루 들깨가루에 된장 고추장 간장 등등. 냉동실에 차곡차곡 모아둔 동네잔치 떡에 매실 진액까지. 그러다 마지막에 처억 내놓으시는 참기름병은 깨가 쏟아지도록 고소하게 살라는 어머니의 사랑표현인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내가 살아 있으면 해 주겠지만 없으면 이제 사서 먹거라, 그리고 너는 새끼도 많으니 한 병 더 넣었다. 암말 말거라” 고소한 슬픔의 한 마디가 목에 딱 걸리는 날의 어머니./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