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검사선서와 법의 정신

2020-08-17     이홍구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검사선서는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로 마무리된다. 모든 초임 검사는 취임 시 이 선서문에 따라 선서해야 한다.

▶검사의 조직체인 검찰은 제정된 법을 관철하는 집행기관이다. 그런데 법의 적용과 집행은 크게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구분된다. ‘법의 지배’는 자연권 사상에 기초한 법치주의의 헌법적 기본 원리를 의미한다. 선출된 최고 권력자도 법 규정에 따라 제한되고 통제된다는 공화주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법에 의한 지배’에서는 법률이 최고 권력자나 군중의 목적과 의지를 실현하는 행정적 수단이나 도구로 작동한다.

▶법의 지배가 멈추는 자리에서 전체주의와 폭정은 시작된다. 나치즘의 광풍을 몰고 온 독일 수권법도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독일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정됐다. 총선거에서 승리한 히틀러에게 압도적 표차로 절대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했다. 다수결 만능주의인 ‘유사 민주주의’와 분할 통치·적대정치에 사로잡힌 ‘법에 의한 지배’만이 만연할 때 한국 민주주의의는 전체주의로 치닫게 된다.

이홍구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