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중기 (논설위원)

2020-08-19     경남일보
관흉국(貫胸國)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들의 조상이 아주 슬픈 일로 제 가슴을 칼로 찔러 죽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애통하고 슬펐길래 가슴을 찔렀을까. ‘산해경’에 등장하는 관흉국 사람들은 그러나 예의범절은 남달랐다. 윗사람이 행차할 때면 가슴 구멍에 장대를 꿰어 가마에 태우듯 모셨다고 한다.

▶섭이국 사람들은 귀가 엄청 크고 무거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다녔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지만 큰 귀가 유용할 때도 있었다. 잠잘 때 한쪽 귀는 담요처럼 깔고 다른 한쪽 귀는 이불로 덮었다고 한다.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사는 일목국(一目國), 여인들만 사는 여인국, 날개 달린 사람들의 우민국(羽民國)이라는 기이한 나라의 이야기도 있다.

▶변방의 먼 나라 사람들을 희화한 이야기지만, 어떤 적대감이나 배타적인 감정이 실리지 않은 신화 속 세상은 각자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호혜적 공존의식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허한 자세, 풍부한 교감 능력을 보여주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동양신화의 흥미난 이야기꺼리를 읽다보면 과학문명이 발달한 요즘 세상과 흡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모진 세파에 ‘구멍 난 가슴’을 부여안고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한 쪽 눈으로만 바라보는 확증편향적인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신화 속 상상력을 발휘하여 찢겨진 민심을 바로 잡는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