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인연

변옥윤 (논설위원)

2020-09-01     경남일보
처음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을 접했을 때 참 순수한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 말로 영혼이 맑은 사람이랄까. 20대의 약관에 ‘나도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한동안 문학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인생은 작은 인연으로 아름답다’는 그는 아흔을 넘긴 나이에 유학시절, 흠모했던 소녀를 찾아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전에 약속한 적도 없지만 막연한 인연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먼 발치에서 얼굴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올해 83세의 여성실업가 이수영씨가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아 무려 676억원을 한 대학에 쾌척했다. 평생 모은 돈이다. 그러면서 그녀가 추구한 것은 서울법대 시절 사랑했던 첫사랑과의 재회였다.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잊지않고 그리워하다 재회한 것은 그녀 역시 인연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끼리의 인연과 우정은 올해 100세의 김형석교수와 김태길교수(작고), 안병욱교수(작고)를 들 수 있다. 동갑내기로 철학을 전공, 베스트작가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의 인연은 생과 사의 갈림에도 여전하다. 만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의 초입인 9월에 들어서도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은 메마르다. 이럴 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손편지가 추억과 인연을 되살린다면 금상첨화이다.
 
변옥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