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섭리(攝理)

정영효 (논설위원)

2020-09-10     경남일보
올해 여름에는 유달리 장마가 길었다. 집중호우로 피해가 컸다. 긴 장마가 끝나자 곧바로 폭염이 시작됐다. 폭염도 예년에 비해 더 길었다. 습도가 높았던 탓에 체감 더위가 더 컸다. 여름에 비가 많고, 더운 것이야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올해는 더 심해서 서민들이 삶을 힘들었다.

▶가을 기운이 온다는 처서(8월 23일)와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난다는 백로(9월 7일)가 지났다. 가을을 알리는 처서·백로(절기)가 그 기세가 등등했던 여름(계절)의 무더위를 물러나게 했다. ‘계절은 절대로 절기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세상이 망한다.

▶자연에 섭리가 있듯이 나라 운영에도 섭리가 있다. ‘정치가 절대로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나라의 섭리다. 국민을 이기려고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섭리가 역행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권력을 가진 정치권에 의해서다. 집권층은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다주택자와 의사, 권력층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행태를 보면 그렇다. 이들도 국민이건만 겁박하고, 이간질시키고, 묵살하며 이기려고 한다. 일부 정치인은 법까지 바꾸면서 굴복시키려 한다. 뜻이 다른 국민도 소통하고, 포용하고, 받들어야 하는 국민이다. 이기고자 해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섭리를 역행하니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정영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