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추석, 새벽시장에서

허정란/수필가

2020-10-11     경남일보

 

창밖에 햇살이 환하다. 코로나도 잠시 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날이다. 추석 장을 보러 가기로 간밤에 그와 약속했다. 휴대폰 알람이 몇 번이나 울린 후에야 정신이 겨우 든다. 느긋한 마음으로 손쉽게 대형 마트에서 제사장을 준비할 수 있을 테지만, 새벽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생동감이 있다.

오만 가지 농산물 보따리를 풀어놓은 왁자지껄한 시장바닥은 푸른 강물에 유영하는 잉어 떼의 퍼덕임이다. 언제 봐도 활기를 몰고 온다. 지난해 추석이었다. 생선을 파는 노점상에서 찾는 물건이 없기에 돌아가야 할 형편이었다. 주인은 냉동 창고에 가서 가져온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가족인 여동생은 손이 굼떴다. 혼자서 장사를 하느라 발을 동동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손님들은 저마다 채근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창고에 간 여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사람들에 떠밀리며 무한정 시간을 보낼 즈음 갑자기 판매 속도가 빨라졌다. 한 남자가 손님의 거스름돈을 받아주고 비닐에 생선을 담아주며 장사를 돕고 있었다. 속도가 붙을수록 생선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팔았다. 남자는 어느새 생선 파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했지만, 곧 물건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라는 걸 알자 안심하고 파트너가 되어 손발을 맞추었다.

그는 완벽한 없는 생선 장수였다. 얼마를 지났을까, 물건을 가지러 갔던 주인이 왔다. 그와 생선을 찾아서 서둘러 빠져나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환한 웃음을 안고 그녀가 비닐봉지를 내민다. 남편은 성큼성큼 세워둔 자동차 쪽으로 사라지고 없다. 그에게 오징어 봉지를 흔들어댄다.

“당신이 일한 품삯으로 싱싱한 오징어를 세 마리나 받았네요.” 호들갑을 떨며 즐거워하는 아내와는 달리 그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딱히 반응이 없다. 오징어가 몇 마리인지 크게 관심도 없다.

그는 삶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노점상의 분주한 일상이 평소 그의 익숙한 일상이듯, 어느 때고 북새통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그 본연의 자세로 뛰어드는 사람일 뿐. 너와 나의 경계선이 없는, 생각과 행동이 같이 가는 건강한 사고가 그의 자산이다,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기도 한.

올 추석 재래시장은 한산하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모두 어서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추석 오징어 세 마리의 인정이 못내 그리운, 추석 새벽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