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떡 찌는 시간

2020-10-14     경남일보
떡 찌는 시간 /고두현


식구들
숫자만큼
모락모락

흰 쌀가루가 익는 동안

둥그런 시루 따라
밤새 술래잡기하다
시룻번 떼어먹으려고
서로 다투던
이웃집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네
오래도록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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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썬 무로 시루구멍을 막았습니다. 팥고물과 쌀가루를 켜켜이 골랐습니다. 쌀가루 켜는 홀수여야 한다며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별미로 호박오가리를 넣기도 하고 콩고물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를 반죽하여 솥과 시루 틈새에 시룻번을 붙였습니다. 다디단 늙은 호박 냄새가 뭉글뭉글 피어나고 그런 내내 떡시루 근처에서 놀았습니다. 쌀가루는 살肉이 되고 팥고물은 피가 된다 이르신 말씀이 생생합니다. 떡이 익는 동안 즐거운 웃음이 굴러다녔습니다. 마당으로 어둠이 천천히 걸어올 때쯤 무명천 두른 어머니는 뜨거운 줄 모르고 떡을 반듯하게 갈라 제비 새끼 같은 자식들 입으로 넣어주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아직 그곳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래도록 그곳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