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경남에 남은 가야의 흔적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되나 문화재청 선정 7곳 중 경남 5곳...2022년 최종결정

2020-10-14     박준언
문화재청이 지난 9월 가야고분군 7곳을 2020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함에 따라 경남지역에 흩어져 있는 가야고분군 5곳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경남의 가야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41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이다. 나머지는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과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이다.

문화재청은 내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가야고분군’ 등재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유네스코는 9~10월쯤 유네스코 자문기구(ICOMOS)의 현지실사와 심사를 진행한 후 2022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가야고분군이 등재되면 한국의 15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다.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경남지역 가야고분군의 특징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1. 총괄
2.김해대성동고분군-금관가야
3.함안말이산고분군-아라가야, 합천옥전고분군-다라국
4.고성 송학동고분군-소가야,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비화가야

가야는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약 600년간 존속하며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큰 세력을 유지했던 연맹체였다. 그러나 ‘강자’에 의해 멸망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에는 문헌에서 조차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외면 받아 왔다.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는 가야사를 새롭게 재조명해 역사·문화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가야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

대성동고분군은 김해시 대성동 418-2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1~5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금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학계는 왕과 지배층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야식 석곽묘가 가장 먼저 출현하는 고분군으로 가야연맹에서 석곽묘의 도입과 확산을 보여준다. 대성동고분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목관묘는 구릉지 주변의 낮은 곳과 평지에 입지하며, 목곽묘와 석곽묘는 구릉지의 정상부와 능선부, 사면부를 따라 축조돼 있다.

고분군은 봉토를 높게 쌓아 올리지 않는 이른 시기의 가야고분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어 5세기 이후 가야연맹의 다른 고분군과 구별된다. 특히 수백 기의 고분이 군집해 있으나 높은 봉토를 축조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고분군의 존재를 쉽게 알 수 없어 1990년 뒤늦게 발견됐다.

대형 목곽묘와 석곽묘에 부장된 가야토기는 고배·기대·호로 구성되며 가야연맹의 공통적 장례풍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서 수입한 청동거울과 용무늬 허리띠,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솥, 일본에서 수입한 청동제 의기 등의 교역품은 대성동고분군을 조성했던 정치체가 중국~가야~일본열도로 이어진 동아시아 국제교역 체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아라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484 일원에 위치한 아라가야의 대표 고분군이다. 봉토를 크게 조성하지 않는 목관묘, 목곽묘에서 석곽묘, 석실묘로 변화하면서 거대한 봉토분이 군집하는 기념비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가야고분군’의 가시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5~6세기 조성된 봉토분은 구릉지 능선과 사면을 따라 127기가 분포한다.

봉토분은 규모에 따라 배치에 차이를 보이는데 구릉지 정상부에는 20~40m의 대형 봉토분이 축조되고 사면부에는 20m 이하의 중소형 봉토분이 축조된다.

5세기부터 축조되는 석곽묘는 가늘고 긴 가야식 석곽묘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지배층의 대형 석곽묘는 길이 7~11m로 길고, 길이 대 너비의 비율이 6:1 이상이다. 세장방형의 석곽묘에는 중앙부에 피장자의 시신이 안치되고 머리 위쪽에는 다량의 토기가 부장되며 발 아래쪽에는 순장자가 배치된다.

20세기 초부터 이뤄진 발굴조사 결과 150여기 무덤에서 8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류 유물은 아라가야의 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여 준다. 집모양, 수레바퀴 모양, 사슴모양, 배모양 등 다양한 형상을 본 떠 만든 토기가 출토됐으며, 불꽃모양의 투창이 있는 독특한 기법이 나타난다.

 

◇합천 옥전고분군-다라국

옥전고분군은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산 23-18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4~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다라국을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다라국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결절지인 황강 주변의 구릉지에 위치하며 다른 정치체,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릉지 동쪽 정상부에는 목곽묘가, 서쪽 정상부에는 석곽묘와 석실묘를 매장부로 하는 30여기의 봉토분이 축조되어 있다.

석곽묘는 금관가야의 영향으로 주곽과 부곽의 구성이 나타나지만, 금관가야와는 달리 매장부 내부의 공간을 칸막이벽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확인됐다. 고분에서는 121기위 유구가 확인됐으며 대도·갑주·마구 등 유물 3000여점이 출토됐다. 특히 M3호분에서는 당시 최고 수준의 금공기술로 제작된 용과 봉황 장식의 대도와 금동장식 투구가 출토돼 가야 지배층의 위세를 가장 과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변의 다른 가야 정치체의 토기뿐만 아니라 백제의 금동관모와 청동그릇, 신라의 금동관, 신라를 통해서 유입된 로마양식 유리용기인 로만글라스, 일본 열도의 갑옷을 통해 다라국의 활발한 대외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고성 송학동고분군-소가야

송학동고분군은 5~6세기 가야연맹을 구성했던 소가야를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 470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가인 고성 분지에 조성돼 바닷길을 이용해 백제, 일본열도와 자율적으로 교섭했던 가야 정치체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릉이 발달하지 않은 지형적 특성으로 3개의 낮은 구릉에 5-1~3구역이 각각 위치한다.

전체적으로 봉토분의 숫자는 적지만, 각 봉토 내의 1기 단독 또는 여러 기의 석곽이 연속적으로 축조된 모습은 고분을 군집해 조성한 가야연맹의 특성을 보인다. 또한 낮은 구릉지에 높은 봉토를 우선 쌓은 다음 그 상부를 굴착해 매장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고분을 완성하였다. 석실묘인 5-1구역 2호분의 입구에 설치된 돌기둥 구조와 벽면, 천장을 붉게 칠한 독특한 모습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고분의 부장품으로는 소가야식 토기뿐만 아니라 대가야, 백제, 신라,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입수한 토기, 마구 등 다양한 교역품이 출토됐다. 한편 삼각형 투창고배를 대표 기종으로 하는 소가야식 토기는 다른 가야 정치체 뿐만 아니라 백제, 일본 등 주변국으로 전해져 교역창구로서의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준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비화가야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번지 일원에 위치한 5~6세기 가야연맹인 비화가야 고분군이다.

창녕분지의 배후산지에서 서쪽 평야를 향해 뻗은 구릉지에 조성돼 있으며, 2개의 유산구역으로 나뉘어 분포한다. 7-1구역은 구릉지에 75기의 봉토분이, 7-2구역은 산지 사면부에 20기의 봉토분이 축조돼 있다. 특히 7호분 주위에는 중소형 고분이 위성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대형 고분과 중소형 고분의 배치방식을 통해 가야 지배층의 계층분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세장한 형태지만 매장부의 한쪽 끝에 입구부가 결합돼 있는 독특한 형식의 가야식 석곽묘가 확인된다. 입구부는 장례 시 피장자의 관을 이동하기 위한 시설로서 3호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특히 봉토분 2기를 연접해 축조한 표형분과 매장부를 자갈돌로 덮고 점토로 마무리한 적석목곽묘의 사례가 확인됐다. 이는 신라와 가까운 지역의 특성이 묘제에 반영된 것이다. 300여점의 출토 유물 중 대도와 갑주 일부는 대가야, 백제, 일본에서 유래한 교역품이다. 그러나 금제귀걸이, 금동제나비모양관장식, 은제허리띠장식, 마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역품은 신라계로서 신라와의 밀접했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박준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