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팽이

2020-10-15     경남일보
팽이
 

 

팽이야 돌아라!

달팽이야 돌아라

멈추면 거기가 바로

천 길 낭떠러지란다

-진효정(시인)



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잠시 머무르게 할 뿐 아니라 정성껏 바라보게 만든다. 팽이와 달팽이의 상관관계에서 그 어원을 더듬다가 이가림 시인의 ‘팽이’라는 시를 읽어본다. ‘내 몸을 쳐라 더 세게… 내 몸을 쳐라 더 아프게’ 팽이의 속성이 잘 드러난 수식 문장이다. 진효정의 ‘팽이’ 또한, 멈추는 순간 죽음이듯 느리지만 끊임없이 제 길을 가야 하는 달팽이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기도 하겠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는 기꺼이 소진될 존재이지만 희망을 품고 오른 달팽이에게 저 직립의 나무는 생의 무대인 것이다. 아래를 바라보면 분명 컷(cut)이겠지만 큐(cue)를 외치며 천천히 오르는 모습이 경이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망망대해 같은 삶속에서 문학(詩)이란, 어쩌면 작가에게 있어서 잔잔히 항해할 돛단배가 아닐까./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