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비움나무

2020-10-29     경남일보




비움 나무



이리 텅 비었는데

그 많은 노래를 불렀다는 거니

내게 보냈던 그 눈부셨던 시들이

가슴 뼈 사이를 훑어 내리던 어둠이었다고?



-신정순(시인, 미국시카고 디카시연구회장)



살점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누른 채 뜨겁게 불렀던 노래가 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 쓰러진 한 그루 나무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시인이 있다. 이는 시 쓰기의 고통을 그려내고자 하는 시인의 자화상인 지도 모른다. 땅속에 붙박여 태양을 따라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간 시인의 행적이라고 해도 좋겠다.



미세한 물관을 따라 봄마다 싹을 피우고 짙푸른 잎 사이로 꽃향기를 던진 여름을 돌아 마른 계절이 오면 온몸을 가두어 열매를 맺었던 것. 그러니까 일상을 온통 예술로 채웠으니 비움은 곧 채움이라는 결과에 이른다. 무서리 내리는 시월의 끝을 바라보며 서정주 시인의 ‘국화’를 받아든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렇게 꽃을 피웠나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