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가을

2020-11-05     경남일보

가을
 

람이 뿌려준 우편물이 도착했다

감정이란 얇은 종이 같아서

너를 거절할 수 없다

-박지우(시인)



잊은 듯 무심히 지내는 일상 속에서 문득, 아니 기어이 보내온 가을의 안부에 잠시 감정을 추슬러 본다. 감정은 우리 삶에 가장 자명하고 가장 직접적이며 유관하여 첫 이미지서부터 밀려오는 그리움의 농도가 무척이나 짙다. 이를 거절할 수 없다는 작가의 고백 앞에서 우리는 시인의 소명은 과연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낙엽’이라는 작품은 쇠락과 죽음을 묘사한 그림으로써 매우 시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반면 시인에게 있어 낙엽의 의미는 소멸이 아닌 ‘가을’이라는 한 편의 디카시가 완성되는 순간으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시점에 가 닿고 있다. 차마 건네지 못했던 말들이 제 빛깔을 다한 체 요약되고 있는 것이다. 시선에 들어오는 색깔은 사람의 감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듯, 이 가을이 무작정 환하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