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화살

김성영 (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2020-12-02     경남일보

 

장난기 많은 떠버리 어부가 그물을 메고 바닷가로 가다가 모래 위의 해골 하나를 발견한다. 어? 웬 해골?

“해골아, 해골아, 말 못 하는 해골아. 너 어쩌다 그리 됐니?”

“말 한 마디 때문에!”

갑자기 해골이 빽 지르는 소리에 기겁을 한 어부는 ‘해골이 말을 한다!’면서 마을로 달려간다. “네 이놈, 해골이 말을 해? 내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하다니” 추장 앞에 끌려간 어부는 억울해서 항변한다. “정말이라니까요. 제 목을 걸겠습니다.” 추장 일행과 함께 바닷가로 간 어부는 해골에게 아까처럼 말을 시킨다. 그러나 해골은 아무 반응이 없다. “네 이놈! 거짓말을 했으니 약속을 지켜라.” 얼마 뒤 바닷가에 해골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다. 먼저의 해골이 나중의 해골에게 말한다. “저런! 몸뚱이가 없네. 어쩌다 그렇게 됐지?”나중의 해골이 빽 소리 지르며 대답한다.

“말 한마디 때문에!”

서아프리카에 전해 오는 설화다. 동아프리카에는 혀가 이보다 더 상처를 준다(Ulimi unauma kuliko meno)는 스와힐리어 속담도 있다. 우리 옛 속담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등등.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던 시절은 정말 옛날이고 요즘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시대이다. 빚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모욕, 명예훼손 등의 문제로 법정에서 벌이는 공멸적 소모전이 한마디 말로 시작된 경우가 허다하다.

기마병이 말 달리며 쏘는 화살은 돌아오지 않지만, 사람이 혀로 쏘는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되돌아온다. 상대방이 쏜 화살은 되돌려 보내려 하고 자신이 쏘는 화살에게는 상대방과 함께 자폭하라는 세상이다.

주말이면 중고생 대상으로 시조와 논술을 가르치는 필자에게 배운 학생이 얼마전 전국학생시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다음은 ‘화살’이라는 제목의 그 작품 전문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화살을 품고 있다. / 주고받는 말들이 보이지 않는 화살 되어 / 서로의 가슴에 박혀 아픈 상처가 된다. // 누군가 독을 발라 나를 겨누고 쏘는 말 /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 / 모두가 내 마음속에 흉터를 남긴다. // 그 화살을 쏜 사람에게 나도 되갚아준다. / 나처럼 아파 봐라…, 난 괜찮을 줄 알았는데 / 이상해, 내가 쏜 화살에 왜 내가 더 아플까.


김성영/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