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관음

2020-12-06     경남일보
관음 /서청춘

어려서 배고파서
오이밭 주인에게
얻어맞은 귀싸대기
이제 와서 괜찮다고
허탕 치듯 사라져버린
슬픈 귀울음

 


배고픔이 당연하다 여긴 날이 있었습니다. 콩서리를 하다 불씨가 밭두렁에 붙은 날도 있었습니다. 요놈들, 벼락같은 소리에 혼비백산하던 날은 집밖을 서성인 시간이 길었습니다. 먹는 것이 가장 절실했던 날이 문득 사라진 듯 아득합니다. 아득한 날의 허기가 귓바퀴를 돌아 달팽이관으로 몰려듭니다. 푸른 오이 냄새 풍기며 미궁 같은 귓바퀴가 시간의 출구를 봉해버립니다. 네 탓 아니다 네 잘못 아니다 주문을 뇌이니 낙인으로 피었던 붉은 손꽃이 집니다. 배고픔이 집니다. 귀 울음 고여 있던 달팽이관에서부터 먹먹한 물음표 같은 귓바퀴 밖으로 관음(觀音)의 자비소리. 괄호로 열린 한쪽 귀가 얼얼합니다. 허탕 치듯 비어있는 시절의 울음이 귓속에 고입니다. 소리가 길을 내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