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중다운 삶

정재모 (논설위원)

2020-12-10     경남일보
고타마 싯다르타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한다. 풍족한 안락과 국왕이라는 미래 다 버리고 스물아홉 나이에 고난의 수행 길에 나섰으니 그 포기는 컸다. 돌고 도는 생로병사의 고통이 곧 삶임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출가였으니 그 목적 또한 위대했다.

▶‘출가’란 집을 나와 구도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출가자를 사문(沙門)이라고 하는데, 팔리어의 사마나 또는 산스크리트어 슈라마나의 음사다. 이는 집을 떠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행동하고 사색하면서 나날을 탁발로 사는 수행자를 뜻한다. 싯다르타도 그러했다. 출가한 그의 소유물은 어깨에 걸친 상의, 중의라는 이름의 속옷, 하의와 탁발 밥그릇 하나가 전부였다. 오늘날 수행자에게 사적 소유가 허용된다는 삼의일발(三衣一鉢)의 유래다.

▶혜민스님이 며칠 전 요란한 뉴스를 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산문집으로 스타가 된 승려다. 그간 자신의 글편들과 세평으로 대표적 무소유 종교인쯤으로 인식돼온 그가 알고보니 부자더라는 거였다. 남산을 바라보는 아파트에 살면서, 뉴욕 이스트리버강을 굽어보는 고급 아파트도 스님이 된 뒤에 샀단다. ‘너무 소유’니 ‘풀소유’니 조롱이 일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중다운 삶을 살겠다고 했다.

▶한 주일도 넘은 철 지난 뉴스를 이 난에 담는 건 ‘중다운 삶’이란 말의 여운 때문이다. 수행자답게 입은 옷에 밥그릇 하나로 살아가는 삶을 뜻하리라. 그 각오가 정녕 치열하다면 그에게 이번 홍역은 ‘위대한 발심’이 될지도 모른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