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나-무

2020-12-20     경남일보
나-무 /김동찬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촉촉하게, 푸르게 살아 있는 동안은
나-무라 불리우지 않는다.
무슨무슨 나무일뿐이다.

초록색 파란 것, 말랑말랑 촉촉한 것
꿈꾸고 꽃피고 무성하던 젊은 날
다 떠나보내고 나서
나-무가 되는 나무

나무는 죽어서 비로소 나-무가 된다.
집이 되고, 책상이 되고, 목발이 되는 나-무
둥기둥 거문고 맑은 노래가 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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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고 이파리 무성한 날을 떠나보내고 비로소 나(我)-무(無)가 된다고 합니다. 푸르게 살아있는 동안은 각자의 이름을 가지다가 모든 것 내려놓는 날 비로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발상. 세상을 달관하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날까요. 집착도 번뇌도 버리면 저절로 이렇게 되는 걸까요. 바라는 일이 많아 생각이 맑지 못한 나는 언제 나-무의 상태가 될까요. 나-무가 되어 집이 되고 목발이 되고 마침내 둥기둥 거문고 맑은 노래가 될 수 있을까요. 깊은 성찰은 사물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는 것일 겁니다. 살아서 갖는 이름과 죽어서 갖는 이름이 같을 것인데, 같은 이름의 다른 속성을 접할 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아이가 되어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나-무가 되는 오늘을 건너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