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의 풍경

김성영 (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

2021-01-06     경남일보

실베짱이의 애벌레는 먹조롱박벌의 독침에 마취되어 먹조롱박벌의 애벌레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면서 죽어간다. 조선이 그랬다. 서구열강이 금광채굴권이니 산림벌목권이니 철도부설권이니 앞다투어 뜯어먹는데 눈 뜨고 당했으니. 권력자들의 소모적 내분에 삼정문란과 가렴주구가 탐관오리를 양산하여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국고는 비어 혼수상태가 된 나라의 예고된 비극이었다.

인류 역사상 많은 나라가 내부 문제로 패망했다. 중국 명나라의 경우 마지막 황제 숭정이 국운을 되살리려 무진 애를 쓰지만, 관리들의 내분과 부패가 자초한 농민반란으로 나라의 기력이 다해가는 와중에 막강 청나라가 숨통을 조여온다. 명 최후의 충신 명장인 원숭환이 산해관에서 청의 팔기군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청 태종의 반간계에 넘어간 숭정은 원숭환을 참수하고 구족을 멸한다. 북경은 농민군 이자성에게 함락되고, 숭정은 황후와 공주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한다. 이자성의 대순은 얼마 못 가고 청나라 천하가 된다.

내분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가령, 폭풍우를 동반한 먹구름이 몰려오고 해는 지는데 꽃밭의 꽃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은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 우리가 그런 꽃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중지란의 핵심은 권력이고 권력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오만인데, 막상 권력을 잡으면 무감각하게 점령군으로 변질하는 것이 문제다. 신은 멸망시키려는 자에게 먼저 광기를 부리게 한다는 라틴어 속담을 늘 상기해야 한다. 광기의 요체는 권력이므로.

권력의 광기는 다양한 은유를 불러온다. 유련망반(流連忘返)과 일엽장목(一葉障目)으로 빠져들며 만능저울과 탄력잣대를 들고 심판자 행세를 하는 것이 마치 망치를 들고 온 세상을 못으로 보는 아이를 방불케 한다. 절대반지라도 낀 듯 모든 기준을 입맛대로 바꾸면서, 반대하거나 거슬리면 ‘감히!’ 하고 눈을 부라리지만, 권력의 광기는 초신성 같다. 찬란하게 빛나지만 소멸하는 별의 폭발 현상일 뿐이다.

분열하면 공멸한다는 공명지조(共命之鳥)의 경고를 무시하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로 분열의 극을 치닫는 오늘날. 문경지교의 주인공인 인상여와 염파처럼 목숨을 건 우정으로 함께 나라를 위하는 모습을 우리는 영영 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 꽃밭의 꽃들은 자중지란의 독에 마취되고 전염되어, 서로 ‘감히!’ 하고 노려보면서 캄캄한 폭풍우에 다 함께 휩쓸리고 말 것인가.

새해가 밝았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서로 위하고 화합하여 안팎의 위험과 위협에 맞서서 함께 헤쳐나가는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성영/시조시인·청명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