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술 권하는 코로나

정재모 (논설위원)

2021-01-07     경남일보
로마신화에서 리베르(Liber)는 동식물 번식과 성장을 주관하는 전원의 신이다. 그리스신화에선 디오니소스로 나온다. 리베르란 말은 본디 시름을 씻어주는 구원자란 뜻. 술의 신으로도 숭배된다. 널리 알려진 술의 신 바커스는 그의 별칭 중 하나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 리버티(liberty)가 이 리베르에서 유래했다. 술이 곧 자유였을까.

▶리베르는 평민 계급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우유를 포도주로 변화시켜 가난한 농부의 시름을 사라지게 해주고, 하룻밤 사이에 초원을 포도밭으로 바꾸어 농사짓게 한 신화 속 기적이 평민 친화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을 거다. 생각해보면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자유’라는 서양 사람들 생각은 여기서부터 싹텄을지도 모른다.

▶술은 경기 침체 때 소비가 왕창 늘어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술 담배 소비지출이 20% 넘게 급증한 바 있다. 사흘 전 한국은행이 밝힌 지난해 3분기(7~9월)의 국민 술 담배 지출이 4조 5363억원이었다.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6.1%가 늘어난 거다. 술과 담배를 뭉뚱그린 통계지만 술만 떼어놔도 이 비율은 썩 다르지 않을 테다.

▶술 담배 소비 증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부진 탓이리라. 문화 오락 따위 레저 활동이 위축된 대신 술 담배로 스트레스를 삭였으리라는 분석이다. 역질 불안과 공포, 고립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술 담배로 얻고자 하는 심정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하지만 과음에 따른 또다른 측면의 건강 해악도 유념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