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3] 맨 밑의 기분

2021-01-21     경남일보
 


맨 아래가 저의 자리로 설계된 것은 어떤 기분일까

바닥에 깔려 꼼짝 못하는 삶이지만

내일이면 또 새로운 짐을 진다

모르는 곳으로 가리 늘 그 자리가 그 자리인 한 사내 이 앞을 지나간다

중간에 끼어 오래도록 버둥대 온 이 자의 기분은,

-윤성학 ‘맨 밑의 기분’



어느 시공간을 살아도 힘들지 않은 삶은 없다. 삶에는 각자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조건을 준다 해도 행복이 일률적이지 않은 이유다. 결국 삶의 긍정적인 자세만이 한 삶을 구제한다. 그것을 일찌감치 아는 이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의 형식은 달라진다. 시인은 “맨 아래”와 “중간”의 의미적 계급을 삭제한다. 현존재의 존재만 있다. “중간에 끼어 오래도록 버둥대 온 이”의 기분을 살펴달라고 맨 밑의 화자에게 내놓을 수 있다. 비기는 시각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이 없음으로 시간조차 정체된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중간에 낀 이의 삶을 “맨 밑의 기분”을 통해 드러내며 자신을 위무한다. 살아갈 힘의 재충전인 셈이다.

삶이 불행하다고 여겨질 때는 내가 나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타자의 욕망만을 추구할 때 병적인 삶이 되며 병든 사람이 된다. 세상을 정상적으로 사는 일이 힘들다손 치더라도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사는 이들이 부디, 자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힘들지만 대부분 다 그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