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대법원장의 거짓말

정재모 (논설위원)

2021-02-08     경남일보
김명수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의 대화 내용에 관해서다. 지난해 8월 임 판사가 건강을 이유로 사표를 내자 ‘국회가 탄핵을 추진 중이어서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말했다고 임 판사가 밝혔다. 그러자 대법원장은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적 없다고 잡아뗐다. 못할 말인 줄은 알았던 게다. 하지만 녹취록이 흑백을 가리고 말았다.

▶거짓말이 백일하에 드러나 온 세상 입들이 내는 소리가 그치질 않고 있다. 욕하는 소리, 준엄히 꾸짖는 말, 자격 없으니 그만 내려오라는 아우성.... 그러나 무엇보다 시정(市井)의 낄낄거림이 가장 뼈 아플 거다. 삼십 몇 년을 법관으로 살아온 그 권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견딜만 하겠는가.

▶벼슬은 높은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게 옛글의 가르침이다.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仕不必達 要之無愧). 송나라 문인 나대경의 학림옥로(鶴林玉露)라는 평론집에 있는 말이다. 학문도 굳이 깊고 넓을 필요가 없이 그저 쓸모 있으면 족하다는 말과 합쳐서 유용무괴(有用無愧)란 성어로 전해온다. 예나 지금이나 부끄럽지 않게 사는 걸 사람들은 높은 벼슬자리보다 낫게 쳐준다.

▶대법원장은 온갖 비난과 조롱에도 먼산만 보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을 못했다며 끝내 귀 막고 눈 감아버릴 일이 아니지 싶다. 자기를 감싸주는 사람들 뒤에 더 이상 숨지 않는 게 그나마 이쯤에서 치욕을 차단하는 일이 아닐까. 우리네 시정 서인들의 생각이 그렇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