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7] ‘따뜻한 죽음’

2021-02-25     경남일보

 

 ‘따뜻한 죽음’

 

어깨에 새들을 달고

하늘로 오르다

푸른 바람에 무너졌네

땅에 쌓였네

마침내 사람 곁으로 돌아왔네

-오민석 시인, ‘따뜻한 죽음’



자연의 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완성이다. 사람의 일은 그렇지 않아 존재하는 것을 넘어 어느 것에든 무엇이 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형성한다. 자연의 일보다 사람의 일이 진지하고 흥미로운 이유이다. 나 같은 범부는 지상의 모든 일이란 사람의 문법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야 인간의 거친 생의 의미를 무슨 힘으로 깨치겠는가. 거기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있기 마련이므로.

노드롭 프라이의 주술적 의식으로 본다면 ‘불’은 제의의 원천이다. 불이 나무를 태우는 것은 나무의 죽음이지만 동시에 나무의 잠재태가 현실태로 부활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의 ‘따뜻한 죽음’이라는 아이러니한 시각이 가능한 이유이다. 불의 제의를 통해 죽은 나무가 곧 파릇파릇 봄을 몰고 올 것이므로.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