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춘분 사이

안채영 (시인·마루문학회장)

2021-03-08     경남일보

우수(雨水)와 경칩(驚蟄)을 지나면 봄이 완연하다. 경칩 어디에도 개구리가 없는데 늘 설명은 개구리가 놀라 땅에서 나오는 절기로 뇌리에 새기어 있다. 아마도 절기 앞에 붙은 놀랄 경(驚)에 기인했음이라. 공경할 경(敬)에 말 마(馬)가 합해져 만들어진 형성자로 말뜻인 즉 몽둥이 앞에선 개도 공손해 진다니 말이 놀라는 형세가 다름 아닌 驚의 제자 원리이다.

일본은 다르게 계칩(啓蟄)으로 읽는다. 기원전 2세기 경 전한의 황제 경제(景帝)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피휘(避諱)하는 바람에 계가 경으로 대체(代替)되었지만 일본은 처음 것을 고수한다. 하지만 고유 의미인 틀어박힌 칩(蟄) 상태를 벗어나 밖으로 나온다는 절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숨을 칩(蟄) 파자는 더 재미있다. 잡을 집(執)과 벌레 훼, 결합으로 뜻을 새긴다면 벌레가 집(執)한 상태인데, 집이란, 설문해자를 보면 포죄인이라 했다. 다행 행(幸) 옛 자는 놀랠 녑이고 환(丸)은, 잡을 극 이 변한 글자이다. 뜻인 즉, 큰 죄를 지어 포박당한 죄인 모습이 집(執)이란 글자이니 세상을 피해 은둔한 벌레처럼 웅크리고 사는 것을 칩(蟄)인 상태라 하겠다.

겨울이 동물에게는 그렇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잠든 것도 아닌 상태가 동면(冬眠)이다. 겨울잠은 밤잠과 다른 혹독함이 있다. 월동을 하는 동안 스스로를 빈사 상태에 가두고 따뜻한 이듬해를 기다리는 지혜를 설명하기에는 칩(蟄)만한 게 없다. 그 칩거에서 해방되어 몸을 추스르는 것에는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긴 병 끝에 털고 일어서는 환자가 병을 이기기 위해 서서히 몸을 추스르는 준비시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경칩이후 춘분(春分)이 그런 것이다. 자연이 오묘한 것인지 조상의 지혜가 깊은 것인지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지혜이다.

세종 때 편찬된 칠정산내편은 元의 수시력을 우리 실정에 맞춘 관상수시(觀象授時) 천문서이다. 이 책은 경칩을 5일 단위로 초, 중, 말후로 구분한다. 초후(初候)엔 복숭아 꽃이 피고 중후(中候)에는 꾀꼬리 울음이 짝을 찾고 말후(末候)가 되면 매가 변하여 비둘기가 된다고 했다. 만물이 평화롭고 맹금도 온순하게 변한다니 이렇듯 자연의 이치대로 바뀌길 빈다.

또한 계(啓)와 경(驚)에는 몽둥이가 들어있다. 이 몽둥이는 지금의 백신으로 코로나를 잡는 무기가 될 듯하다. 이 깊은 동면의 인고를 겪게한 코로나19 늪에서 깨치고 나오자. 자연과 동화되고 그 동안 부비지 못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성 회복하는 경칩이기를 바래본다. 그래야 인간성 회복하는 봄이 되지 않겠는가.

안채영/시인·마루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