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사병의 두발

정재모 (논설위원)

2021-03-18     경남일보
고려 충렬왕 때 몽고 풍습인 변발(앞·옆머리를 밀고 남은 머리를 뒤로 땋은 머리)이 강제되었다. 대한제국 김홍집 내각은 1895년 11월 조선 백성의 상투머리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70년대 유신 시절엔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의 장발까지 단속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이처럼 두발 강제는 연원이 깊고 내용도 갖가지다.

▶짧은 머리 풍은 일본식 제복과 함께 일제 때 유입됐다. 학생과 군인의 막깎이 머리도 그때 들어왔다. 초등학교에 막깎이 규정은 없었지만 70년대까지 두발을 기른 어린이는 많지 않았다. 하이칼라 머리와 막깎이는 이발 요금이 달랐다. 부모님들은 한푼이라도 덜 드는 막깎이를 시켰던 거다.

▶중·고생 두발 자유화는 1980년에 이루어졌다. 엄격히 말하면 완전 자유화는 아니다. 학교별로 나름의 규정은 뒀던 거다. 하지만 그 옛날 막깎은 머리에서 2~3㎜만 길어나도 담임선생님이나 학생주임이 바리캉으로 머리 한가운데를 ‘고속도로’처럼 밀었던 일을 생각하면 노예 해방에 비할 만한 자유가 아니랴. 그래도 학교에선 학생인권조례 같은 잣대로 완전 자유화를 부르짖곤 한다.

▶육군 일반 병사의 두발은 앞머리가 3㎝까지다. 짧은 스포츠칼라 정도인 셈. 하나 규정일 뿐 병영 현실은 가차없는 막깎이다. ‘인권’ 주장은 이런 현실을 비켜가지 않는다. 병사 휴대폰 허용 이후 왜 간부만 머리를 기를 수 있냐는 불만이 드센 모양이다. 이에 군은 간부와 사병의 두발 규정 통일을 추진 중이란다. 격세지감의 탄식에 앞서 기강 해이나 위생 문제도 잘 따져본 방침인지 궁금하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