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세월 ‘지슬’

양하영 (진주교대신문사 편집국장)

2021-03-24     경남일보
꽃샘추위를 끝내고, 많은 생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4월의 봄날이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죽어간 가장 잔인한 4월이 존재했다. 그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작품이 바로 영화 ‘지슬’이다. ‘지슬’은 오멸 감독의 흑백영화로, 당시 약 3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제주의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지슬이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왜 하필 ‘지슬’일까. 그리고 이러한 제목과 연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1948년 11월 미군과 신생 한국정부군은 제주도에 대해 계엄령 선포와 함께, 섬 해안선 5㎞ 밖인 중산간 지역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른바 ‘초토화 작전’의 시작이었다. 옆 마을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둘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순수했던 이들은 본인들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미처 알지 못했다. 쫓아올 군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마을에서 가져온 감자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한편 마을에서는 노쇠하여 함께 떠나지 못하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감자를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피난 와중에도 감자를 나눠 먹으며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던 이들은 결국 죽임당하게 되고, 자식들이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몇 알의 감자는 결국 죽어가는 부모와 함께 불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보이던 감자는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 혹은 그들이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결국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만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념 대립으로 죽임당한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향기로운 꽃내음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4월의 제주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여전히 한날한시에 제사 지내는 집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싱그러운 제주의 모든 곳이 학살터였으며,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그 시신들이 버려지던 매장지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꽃목숨들이 부러졌고, 남겨진 유족들은 그날의 고통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비극을, 우리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4월의 제주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양하영 (진주교대신문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