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봄밤의 꿈

2021-03-28     경남일보
봄밤의 꿈 /한명희

“어서 오세요”



오리누룽지탕 음식점 입구

새장에 갇힌 앵무새 한 마리

찰진 인사가

울엄마 십 수 년 레퍼토리다



감정 없이 훈련되어 목줄을 타고 나오는 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엄마표 어서 오시라는 말



그 시간 속에는

찬물 설거지를 하다가도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접시에 담다가도

풍로로 숯불을 피우다가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반기며

고단한 생의 시를 쓰셨던 엄마의 레퍼토리가

앞치마를 벗고 봄밤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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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부질없는 시간이 어디 있겠나. 긴 겨울을 지나 나무마다 물이 오르는 봄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때의 엄마만큼 나이가 들었고 그때의 엄마는 먼 기억이 되었다. 엄마에게 새로 생겨나는 봄의 옷을 입힌다. 봄과 엄마의 이미지는 어딘지 낯설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듯 늘 찬물에 손 담그고 생의 고단함만 보여주었으니 어쩌면 늦가을이나 스산한 겨울 이미지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앞치마를 벗겨주고 봄밤에 시를 쓰는 엄마이게 해주고 싶은 착한 사람은 온몸으로 체감한 엄마의 생을 시로 읽어낸다. 그리하여 엄마는 그 자체로 시이고 시인이다. 오리누룽지탕 음식점을 하면서 앵무새처럼 어서 오시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 생의 순환처럼 어서 오시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제 앵무새는 새장에서 풀어주어야 할 때다. 목련이 촉을 올리는 지금은 바람의 온기가 너그러운 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