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래도

김순선 (문화예술인)

2021-04-21     경남일보


찌푸린 하늘 덕분에 그동안 자연을 느낄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모처럼 화창한 날이라 혼자서 오랜만에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마침 공원 한쪽 운동장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몇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때 같으면 아이들로 붐비는 곳인데 요즘엔 코로나로 제한이 되어 횡 하니 조용하다.

이어폰을 통해 전해오는 소리를 벗하여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아 종종걸음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야! 하는 소리와 함께 후다닥 욕설이 들려왔다.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았다 공놀이하던 남학생들이다.

조금 전 함께 어울려 놀던 즐거운 상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남학생들끼리 좀 험하게 놀겠거니 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고 있을 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 하는 외마디가 들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이들과 마주하였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친구들의 다투는 장면을 지켜보고 서 있던 다른 아이들이 다툼을 말리려고 해 보지만 이내 고개 숙이고 말았다.

친구를 탓하며 이어지는 뿔난 손과 입을 통해 쏟아지는 비난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듯 보이는 고개 떨군 한 남학생.

한쪽 볼살이 빨갛게 변했다.

그 사이 산책로를 거닐던 몇 몇 사람들의 시선이 있었지만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씩씩대는 모습을 보이며 얼마간 엎치락 뒤치락 거리다 계속해서 지켜보며 호통 섞인 훈수와 이어지는 저지 속에 맞은 학생도 때리던 학생도 별일 아니라고 하며 괜찮다고 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항에 조금 주눅 든 듯 함께 있던 친구들도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

이윽고 어른의 시선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지 급박한 상항은 조금 누그러졌고 아이들 스스로 자제력 발산을 통하여 사태는 진정 되어 갔다.

요즘 청소년이 두렵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소리를 종종 듣는다. 예전 우리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하신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같은 심정의 어른들이 계셨다는 것을 기억한다. 다만 내 아이 남의 아이를 떠나 관심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의 넉넉한 마음과 훈계를 미덕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김순선 (문화예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