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외교장관의 ‘해몽’

2021-04-29     경남일보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이치에 맞추는 경우에 ‘영서연설’이라 한다. 초나라 서울(영)에서 쓴 글(書)을 연나라(燕)에서 설명(說)한다는 게 넉 자의 뜻이다. 전국시대 강국 초나라가 연나라에 보낼 문서를 썼다. 촛불을 밝히고 있던 시종이 졸았던지 주위가 어두워졌다. 붓 잡은 이가 호통을 쳤다. ‘촛불을 들라(擧燭)’. 아뿔사 고압적 외교문서에 저도 몰래 그만 ‘거촉’을 써넣고 말았다.

▶맥락상 난데없는 거촉을 두고 연나라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이랬다. “좋은 인재를 발굴하여 정치를 밝게 하라는 뜻이로군.” 강자의 헛소리를 금언이라고 해석한 거다. 성어 뒷부분 ‘연설(燕說)’을 연열로 읽고 ‘영에서 쓴 글에 연이 기뻐한다’로 푸는 경우도 있다. 한비자의 우화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의 말 한마디가 일전 국민 염장을 질렀다. 재작년 11월 서해 창린도를 타격한 북의 해안포 사격과 작년 5월 전방 GP 총격에 대한 언급이었다. 남북군사합의의 ‘사소한 위반’이라며 ‘굉장히 절제된 도발’이라고 말한 것. 지난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다. 북한이 문 대통령더러 삶은 소대가리라느니, 미국산 앵무새 따위로 쏟아낸 막말에 대해선 ‘협상 재개하자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도 했다. 일러 북서남설(北書南說)이라 할까.

▶당하고도 곱게 보려는 억지가 읽히고도 남는다. 우리에게 한 총질도 조사해보니 굉장히 조심한 흔적이 있더라? 우리 반격에 대응을 안해온 걸 감안해야 한다?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다. 핵 못 가진 군비(軍備) 소국의 구차한 아첨인가. 울화가 치민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