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LH 개명 바람

2021-05-20     경남일보
공자가 사수현 어디를 지날 때 갈증이 났지만 그곳 물을 마시지 않았다. 우물 명이 도둑 도 자를 쓰는 도천이었기 때문이다. 또 뙤약볕에 지친 어느 때는 나무 그늘을 보고도 쉬지 않았다. 그 나무 이름이 악할 악 자 악목이었던 거다(갈불음도천수 열불식악목음 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증자는 여행 중 승모(勝母)촌을 지나면서 밤을 맞았지만 묵지 않았다. 모친을 이긴다는 마을에 차마 들 수 없었던 것.

▶회남자의 이 고사들은 군자의 행실이 명분과 도리에 어긋나선 안 된다는 훈계를 품고 있다. 여기에는 사물의 이름(네이밍)이 중요하다는 뜻도 덤으로 묻어 있다. 개념을 형상화한 것이 사물의 이름일 터. 때문에 이름이 께름칙하면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실체에 대한 이미지도 개운찮을 거다.

▶멀지 않은 옛날 전국에 ‘이북면’이 세 곳 있었다. 글자는 각기 달랐지만 그 기의(記意)는 이북(以北)이었기에 주민들이 개명을 간절히 원했다. 해서 김해서는 한림으로, 충남 서산서는 이원으로, 강원 고성군 이북면은 신북면으로 각각 바꿨다. 이렇듯 주민들은 자기 마을의 ‘이상한’ 이름에 대해 남들이 못 느끼는 비원 같은 걸 갖고 있다.

▶진주 혁신도시 LH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이름에서 LH 지우기에 나섰다. 부동산 비리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인가? 수도권에선 그 일 이전부터 개명 바람이 불었다. LH 이름을 피하는 이유가 달리 있다는 애기다. 혹시 싸구려 집 이미지? 최근 세간에선 ‘내로남불’하는 사람더러 ‘조국스럽다’고 한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이름 한 번 추해지고 나면 받는 대접이 이렇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