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 변화맹시

2021-06-10     경남일보
학생 셋에게 흰옷, 다른 셋에는 검은 옷을 입혀 서로 농구공 패스놀이를 하게 했다. 그 동영상을 찍어 다수 학생에게 보여 주었다. 보이기 전 그들에겐 흰옷 팀의 패스 회수를 세어보란 미션이 주어졌다. 영상이 끝난 뒤 물었다. 화면에 선수 말고 무엇이 지나가던가? 영상에는 고릴라(처럼 꾸민 사람)가 가슴을 치며 선수들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이 있었다.

▶놀랍게도 패스에 집중한 영상 관람자 절반 이상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본 거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시절인 1999년 수행한, 저 유명한 투명 고릴라 실험이다(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

▶이처럼 우리는 종종 눈 앞의 일을 보고도 못 본다. 이른바 변화맹시(變化盲視, Change blindness). 주의가 한곳에 꽂히면 주변의 다른 변화는 보지 못하는 거다. 무주의 맹시라고도 한다. 심리학 분야뿐 아니라 오늘날 인문학 전 분야에 폭넓게 원용되는 용어요 개념이 되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나타났다. 현 정권 출범 책사란 평 속에 작년 총선 기획자로 여권에 180석을 안겨준 그다. 그 뒤 ‘내 역할 끝’이라며 해외로 떠났다가 돌아온 거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민장 때부터 오만했다며 여권 행태를 ‘변화맹시’라 했다. 변화한 국민 시선을 못 읽었다는 탄식이다. 현 상황을 두고 정권 재창출에 비관적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 자신은 정치할 뜻이 없다고도 했다. 그말 곧이 믿는 건 그야말로 변화맹시일지 모른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