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막도장 (신순금)

2021-06-14     경남일보
나를 막 사용해도 홀대해도 참았습니다


내 몸 하나 담길 곳 없이

맨몸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들어갈 자리에 타원형으로 가볍게

족적을 남기곤 서랍에 뒹굴다가 곧 잊히기도 했습니다

행운의 대추나무도 값비싼 상아도 아닌

그저 살아온 삶,

언제부턴가 모습을 바꾸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각인된 이름마저 무뎌져

중요한 자리엔 늘 뒷전이었습니다

이제 이별의 날이 왔습니다

서류 한 장으로 타인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온 이력 때문이거나 지난 생을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혼인 서약에 찍었던 막도장

마지막 서류에도 같은 족적을 남겨야 합니다



이제부터 막살지 않겠습니다

 



문득 주변을 돌아다 볼 일이다, 차마 소중한 것 인줄 모르고 내팽개치며 살았던 것들을 다시 챙겨 볼 일이다. 반복과 익숙한 일상에서 존재의 소외를 느끼는 일들에 새삼 확인할 일이다.

조건 없이 늘 등 뒤에 서 있는 이들의 수고로움도 살펴 봐야할 일이다

두고 떠나는 것이나 떠나면서 두고 가는 것이나 굳이 사연을 헤아릴 일은 아니지만

흉터의 각오까지의 비장한 최후를 견딘 그 동안의 눈물을 훔쳐 줄 일이다.

우리라는 굴레에서 이제 벗어나는 일. 빈칸을 채우는 막도장의 눈시울이 붉다는 것을 돌이켜 볼 일이다.

간과했든 것들, 더욱 이 시 한편의 울림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