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23] 밀려났나 봄 (손종수 시인)

2021-06-17     경남일보



맹렬하게 타들어오는
풀빛 도화선이 경계를 넘었다

곧 폭발하겠다, 여름!
-손종수 시인 ‘밀려났나 봄’

 

텃밭의 상추를 뜯으면서 뿌리에서 가까운 줄기를 조금 남겨두고 뜯었다. 작은 상추를 뜯다가 뿌리줄기를 다치게 할까 싶은 기우에 잎을 온전히 떼어내지 못했다. 어인 일인지 내 텃밭의 상추는 성장이 더뎠다. 어느 날, 손가락 마디보다 작게 남은 상추 줄기 양쪽으로 잎이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잘려나간 상추에 영양을 몰아주느라 다른 잎은 돌보지도 않고 새 잎을 더는 내지 않고 있었다. 못 된 건 사람뿐이다 싶었다. 나는 모자란 잎들을 다 따주었다.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크기 시작했다.

식물성 생명의 힘이란 것이 그렇다. 흙에 뿌리만 닿을 수 있으면 된다. 존재 방식을 환경에 맞추지만, 생존은 맹렬하다. 시인은 그 지점을 포착한다. (봄이) 밀려났나 보다,라는 시인의 관찰자적 언술이 저 하잘것없는 뭇 생명의 폭발을 부추기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 텃밭의 상추와 저 무모한 풀들이 왕성한 생명의 여름을 몰아왔다. (시인 · 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