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55] 손가락선인장 (정성원)

2021-06-20     경남일보

 


장마가 시작되면 마르는 것을 생각해
비의 그림자가 버석거린다 냄새는 말캉하고

죽으면서 경쾌한 비

젖는 곳이 있다면 한쪽에선 증발하는 마음

공평한 방식으로 비가 내린다

비의 얼룩이 지워지면 백단이 핀다
오아시스로 가자, 서로의 손가락을 깨물며 광활한 모래 언덕으로 가자


갈망은 처음부터 목이 마르는 목적을 가졌지
그것은 행선지를 방황하는 모래알갱이처럼 우리의 방황이 깊어진다는 말

등을 구부릴 때마다 굴곡진 생의 촉수를 달고
한 번도 내 편인 적 없는 너를 생각할래


백단 숲에 손가락이 핀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괜찮다는 표정으로 흔들린다
비의 내용을 기록하는 손가락이 버석거린다

 



아무 곳에 가지를 잘 내는 선인장은 자체에 물이 많다. 하지만 물을 가져본 적 없는 듯 갈망이 생의 촉수를 건드린다. 한 번도 내 편인 적 없는 너를 생각하면 모래무덤처럼 방황이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너의 행선지를 묻는 건 위험한 일이겠다. 그럼에도 우리, 서로의 손가락을 깨물며 광활한 모래언덕으로 가야 한다. 물과 사막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선인장은 선인장이면서 내 손가락이기도 한 것. 그리하여 오종종한 홍색꽃반지 낀 손가락을 연상케 한다는 가설에 옴팡지게 앉으면 그뿐. 손가락은 물기 없이 버석거리고 비의 내용을 아무리 기록해도 버석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에 밑줄을 그으면 그뿐. 그리고 장마가 시작될 때 마르는 것을 먼저 생각하자. 어떤 것으로든 존재의 관여를 허락하지 않는 비는 그런 이유로 죽으면서 경쾌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자. 한쪽이 젖는다면 한쪽이 증발하는 마음을 가진 백단 숲에는 애초에 비의 그림자는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존재의 물음을 던진 화자는 정작 아무렇지 않게 알 수 없는 감정이어도 괜찮다는 표정이므로. 곧 장마라고 한다. 우리에게 가까운 비는 그림자가 둥근 마음이기를. 글자를 쓰는 손가락에 물기가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