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망경동이 진주다

이정옥 (진주문협이사·경해여중교사)

2021-06-23     경남일보
 

물때는 바다낚시의 금과옥조다. 한 번 놓치면 두 번 오지 않는다. 일에도 물때라는 게 있다. 만성적인 슬럼가, 가난의 굴레 못 벗었던 낡은 망경동이 좋은 물때를 만났다. 아름다운 경관을 기대한다는 뜻인 망경(望景)이라는 명칭답게 개발될 모양이다. 빈의 다뉴브강, 독일의 라인강, 프랑스 세느강, 헝가리 부다성과 페스트를 이어주는 도나우 강변에는 공통된 아우라가 있다. 중세 고성들의 고색창연함과 세련된 현대 예술이 절묘하게 공존한다. 박물관, 미술관, 오페라하우스와 목가적인 카페를 찾는 여행자들이 쉴새 없이 오간다. 강과 다리와 미로 같은 골목길에도 낭만적인 스토리를 잘 입혔다.

부다페스트에 세체니 다리가 있다면 진주에는 남강교, 천수교, 희망교가 있다. 프라하 체스키 크롬로프성에서 본 일몰 광경이 망진산 노을과 흡사 하지만 시가지 풍경은 사뭇 다르다. 고풍스런 성당과 교회의 첨탑, 빨간 지붕들이 근대적 분위기의 세체니 라면 무료한 과일리어커, 낡은 옷가게, 세탁소, 미장원, 중국 음식점, 쓰러져 가는 주점들과 너절한 간판들, 볼품없는 사무실이 난립한 곳이 망경동이다.

구 진주역 개발 소식이 그래서 더욱 반갑다. 교통의 요충지인 삼랑진과 진주를 잇던 경전선 철로를 걷어내고 거대한 녹지공원과 복합문화예술거리, 친자연생태계를 복원한다니. 뒷골목 중에서도 뒷골목인 좁은 골목들이 카프카의 황금 소로처럼 재생될 가능성에 가슴이 뛴다. 다닥다닥 붙은 담벼락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경계를 허물고 한국적인 텃밭과 예쁜 정원 가꾼다음 역사적 의미와 전통적 가치 새긴 기념품 전시하면 지역경제 활성에도 도움 될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기로에 선 망경동이다. 온종일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추레한 지붕들 싹 걷어내고 나팔꽃, 능소화, 채송화처럼 자연의 순리 따르는 천진한 생명들 잘 추려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햇빛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 골목골목 다 정리되고 자유로운 거리풍경 새롭게 정비되면 고향 동네 지켜온 세월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느긋한 천성으로 100년 풍상 견딘 망경동이다. 이번 물때 잘 포착해서 무조건 파헤치는 영혼 없는 개발도, 자로 재고 모로 재는 쩨쩨한 개발도 안 했으면 좋겠다. 일상의 회복 공간이자 공동체 삶의 기반이 될 거대한 초록지대 완성되면 망경동이 진주를 대표하는 그런 날 올 것이다.

이정옥 (진주문협이사·경해여중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