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방역기획관의 역할

2021-07-15     경남일보
“음식 만드는 이의 솜씨가 마음에 안 찬다고 시축(尸祝;제사의 축문 낭독자)이 부엌 일에 뛰어들 수는 없습니다.” 양위를 받아달라는 요임금의 간청에 은자 허유(許由)가 손사래치면서 했다는 말이다. 당신이 잘 다스리는데 내가 대신할 필요가 있느냐는 뜻을 에두른 거였다. 장자에 나오는 고사성어 월조대포(越俎代포)가 이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남의 일을 가로채거나 그럴 마음이 동하는 때가 없지 않다. 자기 일도 잘 못하면서 남이 하는 일 처리가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거다. 주제넘은 일이다. 직분이나 처지를 뛰어넘어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저도 모르게 불쑥불쑥 나서는 건 품 좁은 미완성으로 창조된 게 인간이라서 그런가.

▶코로나 4차 유행이 본격화된 요 며칠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이름이 뉴스를 참 많이 타고 있다. 지난 4월 임명 때부터 비판과 반대가 많았던 인물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된 마당에 옥상옥 아니냐는 지적과 ‘자기편 챙겨주기 인사’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그 기 방역관이 정규 업무 담당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하는 일을 가로막으면서 되레 방역을 허물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청와대는 기모란이 업무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정부 기구들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한다. 방역기획관은 ‘수석’급이라는데 가교 역할이나 하는 ‘전령’을 그 급으로 앉혔을까. 백신 수급이 원활치 않고, 그로 인해 국민 혼란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원성이 높다. 야당은 사람 바꾸라고 아우성이다. 허유처럼 ‘월조대포’ 한마디 남기고 스스로 떠날 수는 없을까 .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