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59]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이규보)

2021-08-08     경남일보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새색시 꺾어들고 창가를 지나네

빙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기를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짓궂은 신랑 장난치기를

꽃이 당신보다 예쁘구려

꽃이 더 예쁘단 말에 토라진 새색시

꽃가지를 밟아 뭉개고는

꽃이 저보다 예쁘거든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세요

 


poem산책… 이규보는 고려의 문장가이자 문신이지요. 그의 시풍은 시대를 풍미했는데요.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감상을 읊은 즉흥시로 유명했다는군요. 백운거사라는 호를 가지고 있고요, 말년에 시와 거문고와 술을 즐겼다 하여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고 자청했다고도 하네요.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에도 그의 장난기 어린 즉흥성이 잘 드러나 보입니다. 사랑은 유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론서라도 있는 것처럼요. 천 년 전에도 사랑은 이러했네요. 어린 신부의 투정이 예쁘지 않나요. 예쁨을 농으로 받는 신랑의 짓궂은 미소는 또 어떻고요. 신혼부부의 사랑놀이에 장단을 맞춰봅니다. 감정소모가 얼마나 피곤한지 아직 모르는 이들이 한동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며, 이들 사랑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장단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예쁘게 사랑하십시오. 이로부터 또 천년까지. 넉넉하고 위트 있는 시절에 오래 입꼬리를 올리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