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김여정의 ‘가스라이팅’

2021-08-08     이홍구
심리학 용어인 ‘가스라이팅’은 1938년 스릴러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됐다. 이후 1944년 영화로도 알려졌다. 영화에서는 남편이 재산을 뺏기위해 아내를 심리적으로 조정해 심신미약자로 몰아간다. 결국 아내는 주체성을 상실하고 남편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진 리 센터장은 지난해 6월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문제삼아 남북통신선을 전면 차단한 사태를 분석한 글에서 그는 “북한이 문 정부의 약점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북한의 ‘가스라이팅’은 주로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주도하고 있다. 김여정은 남북 통신선 연결 직후인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했다. 이에 호응하듯 범여권 국회의원 70여명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훈련의 조건부 연기를 공식 요구했다. 이전에도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자 민주당은 전단금지법을 만들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장관은 김여정의 트집잡기에 옷을 벗었다.

▶야권은 북한의 문 정부 길들이기를 두고 “김여정이 문재인 정부 상왕이냐.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문 정권이 가스라이팅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특보단으로 활동한 간첩사건이 터져 나왔다. 청와대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홍구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