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아들의 가족관계 증명서

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2021-09-01     경남일보


문득 소스라치는 외마디 ‘나에게 소중한 가족들이 있다’ 이 한마디 내뱉고 난 후, 무거운 바람결에 더 나아가질 못하고 한 곳에서 서성거려 본다. 그리고 그 가족이란 단어를 하루가 끝난 시간, 책갈피 속에 두고 어학적으로 한 번 접근 해 보고 있었다. 피를 나눈 혈연의 관계로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기본적인 소집단을 말한다. 이 얼마나 싱그럽고 경쾌하면 생동감이 있는 명사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이며, 어떤 현상을 흘러가고 있을까? 무척 어렵고 고민스럽다.

그런 요즈음 나와 너,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운 구성원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필자에게도 운명적으로 지난해 5월 10일에 새로운 가족들을 만났다. 그 새로운 가족들에 ‘가족사랑’ 만들기에 무임승차를 2년째 하고 있다. 어떤 댓가성이나 어떤 목적 없는 승차…. 참 설레는 출발이다. 그 무임승차의 유혹이 나로 하여금 아들의 처부모님, 처제의 일가족을 불러들였다.

필자의 농원 진입로에 ‘여름휴가’라고 현판하고 1박 2일, 4끼의 둥근 밥상을 아들의 새로운 가족 구성원 8명과 깔깔거리고… 그 웃음반찬을 먹고 지내다가 그 가족들이 각자의 일상으로 귀가 할려는 순간 “엄마! 우리 이모부할아버지 집에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7살 딸아이는 그 이모부할아버지와 ‘말랑이 거래’ 놀이를 하자고 보챈다. 그 속삭이는 유혹에 슬그머니 넘어가 주는 나(아들의 처제 딸, 7세)와 너(아들의 아버지 63세)는 피붙이의 관계성과 세대의 개연성도 전혀 없는 나와 너에서 ‘우리’가 되는 순간이다.

유교사상이 짙은 우리 고유의 관습에 사돈 간의 관계는 가족이 아니라 백년손님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벽을 뛰어 넘어 가족관계로 형성하는 무임승차를 하였다. 형제자매 없이 ‘1남’이라는 외딴 섬을 지키게 한 사죄이리라. 나의 유죄를 무죄로 전환시키게 해 주는 이 순간, 나의 삶은 눈부시고 있다. 이 7살의 여린 소녀가 반평생을 더 살아온 우리에게 말랑말랑한 관계조성을 보여주고 있는 8월의 햇살이 무척이나 온화하다.

가족이란 범위는 광대하거나 특별나지도 않다. 다만 이렇게 자식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해 1박2일 동안 며느리가 피로 맺은 모든 식구와 나와 핏줄을 나눈 혈연이 지낸 2020년과 2021년이 큰 가족의 의미는 아닐까? 하얗게 밤을 지새운 이튼 날, 아침사색으로 이런 나의 아들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태평천하에 발부 해 본다.

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