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백로(白露) 즈음

2021-09-06     경남일보
제비가 강남으로 길 떠날 채비에 분주하고 기러기 울어 외는 소리 귓전에 들릴 즈음, 백로(白露)가 오늘이다. 밤 공기가 서늘하여 흰 이슬이 내린다는 절기이다. 들판의 곡식은 이미 누런 빛을 띠며 고개가 한결 무거워 졌고 과일은 남은 양광(陽光)에 기대어 마지막 자양분을 한껏 저장하기에 바쁜 계절이다.

▶올해도 마른 장마, 집중호우 잘 견뎌 늦 태풍과 혹독한 기상이변이 없는 한 그럭저럭 평년작을 웃도는 풍년농사가 예감된다. 굽은 허리, 읍내 병원 수시로 드나들며 진통제 주사 맞으며 지팡이에 의존해 무릎 관절염 견디며 노심초사 농삿일에 전념한 농민들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예사롭지 않은 농산물 가격에 도시 서민 울상을 짓지만 농민들 탓은 아니다. 햅쌀로 밥 지어 조상 뵈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농민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어차피 우리의 에너지원 자급율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요즘 농촌에서 도시로 보내는 택배의 대부분은 허리굽은 노인들이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농산물이다. 그 속에는 부모님의 한숨과 땀, 고통이 담겨있다. 견딜 수 없는 농삿일을 접으려 해도 아들, 딸이 눈에 밟혀 애써 가꾼 결실이다. 행여 배달음식에 맛들여, 바쁘다는 핑계로 반찬가게 의지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보낸 농산물을 썩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확할 일손마저 구하기 힘든 백로 즈음, 고향 집 찾아 일 거드는 것이 보약보다 낫다. 변옥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