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수승대 개명

2021-09-08     경남일보
퇴계 이황이 농월정에 우거하던 장인 회갑연에 왔다가 ‘수송대(愁送臺)’에서 교유하던 거창 선비 요수 신권을 만나려 했지만 도성의 호출로 급히 떠나게 된다. 퇴계는 대신 ‘수송대’라는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니 최치원의 ‘계원필경’에 나오는 ‘아름다운 경치를 찾는다’는 뜻의 ‘수승대(搜勝臺)’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시 한 수를 남긴다.

▶덕유산 선비 갈천 임훈은 생각이 달랐다. 남의 고을 유서 깊은 명소의 이름을 이방인이 마음대로 바꾸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 ‘수송대에 노닐며(游愁送臺記)’라는 화답시를 통해 에둘러 표현했다. 퇴계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지목한 ‘근심 수(愁)’를 두 번씩이나 쓰고 ‘길손도 떠나니’라는 표현으로 불편한 심사를 은근히 드러냈다.

▶요수는 처남인 갈천과 생각이 달랐다. 퇴계의 수승대 개명에 대한 고마움을 화답시로 표현한다. 이후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이곳에서 송별할 때마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고 해서 또는 아름다운 경치에 근심을 잊는다는 뜻의 ‘수송대’와 퇴계가 남긴 ‘수승대’의 이름이 혼용되어 오다 오늘날 ‘수승대’로 불린다.

▶문화재청이 최근 ‘수승대’를 ‘수송대’로 변경하는 별서공원 명칭변경을 예고해 논란이다. 오백 년 만에 수승대 개명논란이 재현된 셈이다. 지역 주민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의견 수렴이나 협의과정 없는 일방적인 결정 때문이다. 이름은 불러주는 사람들이 주체다. 아무리 좋은 이름인들 그곳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