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여린 온기까지 품는 사회가 되기를

이나래 (경상국립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

2021-09-15     경남일보
 


‘가을맞이 최대 90% 할인’,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색소가 적절하고 예쁜 아이’ 지난 12일 밤, 내가 어떤 가게에서 본 문구들이다. 평범한 문구를 내건 그곳은 동물을 파는 ‘펫샵’이었다. 나는 당당히 자리 잡은 2층짜리 펫샵을 봤다. 건물 전체 통유리 벽을 따라 투명 케이지가 빼곡히 있어 수많은 개와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잘 보이지 않던 건물이 펫샵으로 선명해지고, ‘색소’니 ‘할인’이니 하는 것들이 생명체에 붙은 문구였음을 깨달았을 때, 공포감이 들었다. 오직 인간을 위해 사물처럼 존재하는 유기체를 보는 일이 끔찍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얻기 위해 벌어졌을 일을 상상하니 잔인했다.

2016년, SBS ‘TV 동물농장’은 ‘강아지 공장’의 비윤리적인 ‘생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였다. 좁은 철망에서 개들이 뒤엉켜있었고, 발밑에는 분변이 가득했다. 그곳의 개들은 죽는 날까지 출산만을 반복한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어린 내가 좋아했던 ‘순종 시츄’가 어떻게 펫샵으로 오는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방송의 영향력은 15살 나의 눈에도 선명히 보였다. 인위적 교배를 수반하는 품종견·묘를 ‘분양’하는 대신, 유기동물 ‘입양’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재산처럼 일컫던 ‘애완동물’이 삶을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바뀌었다. 방영 몇 개월 뒤, 동네에 유일하던 펫샵까지 폐업했을 땐 이상한 고양감을 느끼기도 했다.

15살의 내가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는 더 괜찮은 방법으로 개를 사랑할 수 있음을 안다. 당장 유기견 보호센터에 가 봉사하거나, 펫샵 앞에서 동물 학대 반대 1인 시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행동하는 정의가 있다면, ‘행동하지 않는 정의’도 있다. 펫샵에 가지 않고, 품종견·묘를 소비하지 않는 것. 소극적이지만 여기까지도 ‘정의’이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소극적일지언정 온정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말 못 하는 동물의 고통을 헤아리고, 작은 온기도 품을 줄 아는 ‘감수성 높은 사회’를 원한다. 2021년, 인간의 애정이 필연적으로 다른 종의 고통을 수반하는 잔인한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도록 ‘개인의 소극적인 정의’가 모여야 할 때다.

이나래 경상국립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