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부상자 도우려다…추석에 떠난 '의인'

진주서 내과 운영 故 이영곤씨, 성묘 귀갓길에 사고현장 돕다 다른 차에 치여

2021-09-23     백지영
추석을 맞아 성묘를 다녀오던 의사가 교통사고 현장을 돕기 위해 차량에서 내렸다가 다른 차량에 치여 숨지는 참변을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3일 경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11시 53분께 진주시 정촌면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면 진주나들목 인근에서 SUV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선친 묘소를 찾은 뒤 귀가하던 故 이영곤(61) 의사는 사고 목격 즉시 자신의 차량을 갓길에 세운 채 폭우를 뚫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의료인으로서 혹시나 부상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는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행히 사고 차량 내 탑승자가 현장 응급 처치는 불필요한 가벼운 상처만 입은 것을 확인한 이 씨는 한숨을 돌리고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불행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사고 현장 후방에서 1차로를 달리던 또다른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갓길에 주차해둔 차를 타려던 이 씨를 덮친 것. 두 차량 사이에 끼여 출혈과 함께 의식을 잃은 이 씨는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사천 출신의 고인은 진주고 졸업 후 부산대의대에 진학해 의료인의 길을 걸어오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통했다.

진주 중앙시장 인근에서 30여 년간 자신의 이름을 딴 내과를 운영하며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무료 진료를 베풀었다. 어릴 적 리어카를 끌어가며 장학금의 도움으로 겨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기에 어려운 이들을 보면 남 일처럼 넘어갈 수가 없었다.

폐결핵 환자들에겐 수년째 무료로 약을 처방하고, 지역 내 학생 인재들에겐 장학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 근무와 비교해 열악한 처우로 의료진들 사이에선 ‘봉사나 마찬가지’라며 기피 대상인 교도소 재소자 진료도 자처해 20년째 매주 3~4회 진주교도소를 찾았다.

고인의 유족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고였지만 평소 성품과 의사로서의 직업 윤리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며 “계속해 병원을 활발히 운영하며 당장 23일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도 받아둔 상태였다”며 참담해 했다.

사고를 접한 지인들도 고인이 평소 배려와 봉사, 희생의 대명사였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고인과 고등학교 동문이자 남진주라이온스클럽 봉사를 함께 해온 김헌규 변호사는 “상업적인 측면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위해 참된 의술을 베푼 진정한 의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친구임에도 존경했는데 이런 참변을 당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교통사고를 수습하고자 차에서 내렸다가 변을 당한 만큼 의사자로 지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