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모유 수유‘에 대한 단상

서지현 경상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2021-09-28     경남일보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 라는 말이 있다. 아주 적은 힘이라도 쥐어짜보겠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소아과에서 일하다보니 젖 먹던 힘이란 대체 어떤 힘일까?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예정일보다 3주 이상 빨리 태어난 아기들은 혼자 힘으로 젖병을 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몸무게가 작아서이기도 하고, 삼키고 숨 쉬는 걸 동시에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유를 먹여본 엄마들은 알겠지만 건강한 아기들도 첫날, 둘째 날은 젖을 거의 빨지 못한다. 힘이 더 생기면 처음보다 점점 많은 양의 젖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모유 수유는 이변이 없는 한 하루 이틀만 지나면 수월히 적응할 수 있는 육아의 첫 단추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실에서 모유 수유는 아기와 엄마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입장에서는 분유보다는 모유를 먹이라고 권하지만 모유는 철분이 없어서 6개월이 넘어가면 보충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해 분유를 먹이는 엄마 역시 결코 나쁜 엄마가 아니다는 점을 확실히 말 해 주고 싶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죄책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나의 경우 전공의 때 아이를 낳았다. 오랜 진통 끝에 결국 양수가 터져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첫 2일 동안은 아이를 보지도 못했다. 모유 수유를 하려고 준비를 나름 했음에도 젖은 나올 기미가 없어 분유를 먹였다. 분만 3일째 젖이 돌기 시작해 젖을 빨리려고 무진 애를 써 봤지만 아이는 거절하고 울었다. 악몽같은 수유패턴을 반복한 후 결국 분유를 선택했다.

유축기로 짠다고 젖꼭지가 헐고, 젖몸살을 하고, 결국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젖병을 물려 수유했다.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있는 힘을 다해 분유를 빨았다. 그리고 배불리 먹고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랬기에 적어도 나는 출산 예정인 엄마들에게 모유 수유만이 최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유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모유가 부족해서, 직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어서 등 저마다의 이유로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엄마들에게 이기적이라거나 ‘루저’라는 낙인은 찍지 말아야한다. 저 힘든 임신과 출산을 겪어내고 장차 이 사회의 일원이 될 아이를 품어서 수유를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니까!

서지현 경상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