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감히, 너 따위가

이정희 시인·프리랜서

2021-10-11     경남일보


닫혀 있는 대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오늘도 마당에 나와 있을까?’ 무거운 책가방을 살며시 대문 옆에 내려놓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문의 문고리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목을 빼서 마당을 살펴보았다. 햐! 바로 그때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던 그놈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놈은 나를 보자 갑자기 낯빛(볏)이 벌겋게 변하더니, 어딜 감히 들어오려고? 안 되지! 하는 듯 푸드덕 날개를 치며 내게로 달려왔다. 순간 너무 놀라서 잡았던 문고리를 그대로 당겨서 대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막대기를 찾았다. 담장 한 쪽 귀퉁이에 세워두었던 비상용 대나무 장대가 보였다. 이제야 안심이다.

미칠 지경이었다. 날마다 하교 후 집으로 들어올 때면, 만물의 영장(靈長)인 내가 하찮은 짐승에 불가한 그놈, 변덕쟁이 칠면조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나는 항상 쫓겨서 도망 다니다가 그놈의 간(肝)만 키워준 꼴이었다. 그놈은 아버지가 선물로 받아 내게 준 한 쌍의 칠면조 중 수컷이었다. 수놈은 당최 성격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좋았다 나빴다 성질머리는 죽 끓듯해 음악에 맞춰서 기분 좋게 춤을 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면 먹이를 주는 나를 공격해대니, 그놈이 마당에서 얼쩡거리면 나는 특히 조심을 해야 했다. 어이없는 것은 주인인 나를 못 알아보고 덤빈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속수무책으로 다니다가 온 몸을 쪼인 게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아주 괘씸했지만 가둬놓고 키울 수가 없었다. 닭장을 쪼아대고 난동을 부리니 말이다. 게다가 사회성은 또 빵점이라 닭장 속의 수탉과는 누구 하나 피를 보고 쓰러질 때까지 물고 뜯고 싸웠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날고 기었어도 그놈은 한낱 ‘짐승’이다. 이런 짐승의 포악함을 막는데 쓰는 도구가 있었으니 바로 ‘대나무 장대‘였다. 이 장대가 있으니 두렵지가 않았다. 장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폭력을 막아주는데 훌륭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짐승뿐만 아니라 미처 날뛰는 사고(思考)가 생길 때도 이와 같은 ’장대(푯대, 기준)‘ 하나를 무기로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난잡(亂雜)한 사고(思考)와 문제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두 그 사고와 행동의 ‘끝(결과)’을 염두에 두어 자신들의 장대로 그것과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념(邪念)은 얌전히 사그라질 것이다. 각종 사회 문제로 심각한 현실에서 ‘정신적인 장대’ 하나만 있어도 위험한 ‘일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감히, 너 따위가 덤비길 어딜 덤비려 들어!

이정희 시인·프리랜서